[시론] 문화재 안내판은 제자리가 있다
[시론] 문화재 안내판은 제자리가 있다
  • 시사인천
  • 승인 2018.02.1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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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예를 들면, 한라산의 가장 아름다운 자연유산은 백록담이 아니라 한라산이다. 같은 의미에서 문학산의 가치는 문학산성이 아니라 문학산에 있다. 인천항의 미(美)는 마르지 않는 바닷물에 있고, 도로의 근본적 가치는 보행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담겨 있다.

흔히 역사 유산을 문화재와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는 습관이 있다. 오래된 습관은 아니다. 5.16군사쿠데타 직후 문화재보호법을 급조해 1962년 1월에 공포했으니, 우리가 문화재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기간은 50여년을 조금 넘겼다.

문화재보호법은 1933년 제정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대신하기 위해 만든 법이고, 이 법령은 1916년부터 시행한 ‘고적 및 유물보존규칙’의 개정판이다. 일제강점기에 제정한 법령을 대체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은 1950년 일본에서 제정된 문화재보호법과 닮은꼴이다. 법률의 목적은 거의 그대로 옮겨 적었고, 문화재의 정의 역시 사실상 단어의 순서만 옮겼다. 각 법률의 제2조에서 규정한 유형문화재의 정의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우리나라의 경우 ‘건조물, 전적(典籍), 서적(書跡), 고문서, 회화, 조각, 공예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ㆍ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考古資料)’라고 했는데, 일본은 ‘건조물, 회화, 조각, 공예품, 서적, 전적, 고문서, 기타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높은 것이나 고고자료와 그 외의 학술상 가치가 높은 역사자료’라고 정의했다.

문화재보호법을 만든 이유는 문화재를 보호ㆍ관리하기 위해서다. 목적만 잘 수행된다면 외국 법률을 인용했다고 해서 뭐라고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지정 문화재’에 집중되는 현재의 관리시스템은 ‘지정되지 못한’ 역사 유산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해, 특히 지역차원에서 폐단이 종종 나타나는 것이 문제다.

과거 우리 선조들도 옛것에 대한 관심은 컸다. 그리고 그것을 ‘고적(古跡)’이나 ‘고물(古物)’이라고 표현했다. 가령, 고려 말의 문신 강회백이 심은 매화나무는 ‘영남지방의 귀중한 고물(古物)’이 됐는데, 이 매화나무가 죽자 증손자가 그 옆에 매화나무를 새로 심었다. 이에 대한 이긍익의 평이 멋지다. “정당(政堂)만 손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매화도 그 자손이 자라는구나”라고 했으니.

문화재는 이러한 고적이나 고물에 공공 재산으로서 가치를 덧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멋은 사라지고 재산을 잘 지키는 것이 문화재 관리의 목적이 돼버렸다. 인천시가 관내 문화재 안내판을 종합적으로 정비한다고 한다. 잘한 선택이다. 그 결과 역시 문화재의 멋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인천의 가장 가치 있는 역사 유산은 오랜 세월 사람들이 집을 짓고, 길을 닦고, 생업에 매달리며 살아온 ‘인천’이란 공간이다. 익숙할 뿐이지, 매일 오가는 길과 건물과 마을만큼 멋진 문화재는 없다. 정작 안내판이 있어야할 곳은 우리 선조들이 버티며 살아온 동네의 어귀이고, 우리 부모세대가 매일 출근하던 허름한 생업의 현장이다. 문화재 관리를 넘어 일상의 고적(古跡)으로서 인천의 유산에 대한 관심의 지평이 확장돼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