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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의 사연이 있는 요리이야기 38. 시래기국
심혜진 시민기자  |  sweetsh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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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호] 승인 2018.02.12  11: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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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잘 챙겨 먹고, 아침에 늦잠 자면 안 돼. 둘이 싸우지 말고”

친척 결혼식이 있어 부모님이 서울로 가셨다. 집엔 언니와 나만 남았다. 언니는 초등학교 4학년, 나는 2학년. 학교에 지각하지 않기, 준비물 잘 챙기기, 연탄불 꺼트리지 않기. 부모님이 신신당부한 것들이다. 그중 가장 큰 미션은 학교에서 돌아온 금요일 점심부터 토요일 점심까지, 무려 네 끼니를 차려먹는 것이었다.

금요일 점심은 나 혼자 먹어야했다. 혼자 있는 게 어색했던지, 그날 나는 친구를 집에 데려왔다. 엄마는 당시로썬 귀한 김을 한 통 가득 구워놓고 가셨다. 엄마의 김구이는 소금이 뽀얗게 뿌려진 것이 특징이었다. 아주 짰다는 이야기다. 엄마가 미리 해놓은 밥과 김을 친구와 둘이 먹었다. 나는 평소처럼 김을 아껴 먹었다. 그런데 친구는 김이 짜지도 않은지 간식처럼 마구 입에 넣었다. ‘좀 덜 먹었으면…’싶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언니가 왔다. 참 이상했다. 그때까진 내 눈에 보이지 않던 김 가루들이 방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었다. 언니가 김 통을 열었다. 반이나 없어진 걸 보고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난감하고 화나고 슬프기도 한,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겐 아직 해결해야할 세 끼니가 남아 있었다.

화를 내는 언니에게 나도 열심히 항변했다. ‘내가 많이 먹은 게 아니라 친구가 먹은 것이니 난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이었다. 언니와 나는 큰 소리로 울면서 싸웠다. 곧 머리채도 잡을 참이었다. 그때 누군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가보니 담벼락에 옆집 아주머니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 ⓒ심혜진.

“느그 엄마 서울 가셨재? 이거 시래기국인데 같이 먹어라”

얼떨결에 국그릇을 받아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방안은 고요했다. 언니는 국을 부뚜막 위에 올려놓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저녁에 먹을 거야” 싸움은 끝났다.
저녁 밥상에 그 국을 올렸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국이다. “아까 아줌마가 뭐라고 했지?”

“쓰레기국이라고 한 것 같은데” “그치, 그치, 쓰레기국이라고 했지?” 국물을 떠 신중하게 맛을 봤다. ‘쿰쿰’하고 뭔가 오래된 맛이 났다. “정말 쓰레기 맛이 나!” 우리 둘은 국물을 떠먹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다음날 아침, 동네 아주머니 집에 가서 머리를 빗고 학교에 갔다. 집에 오니 방바닥이 차가웠다. 언니가 아침에 갈아 놓은 연탄불이 꺼진 모양이었다. 점심을 먹었던가, 굶었던가. 찬 방에서 빨래를 개던 중 둘이 동시에 잠이 들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언니가 울었던가, 내가 울었던가. 시내로 나오란 말에 버스를 탔다. 우릴 본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하루 사이에 왜 이렇게 꾀죄죄해졌어”

그날 저녁엔 짜장면을 먹었다. 집에 오자마자 언니가 엄마를 붙들고 말했다. “혜진이가 김을 다 먹어버렸어요” “응, 잘 했어” 사실 김 통에는 여전히 김이 반이나 남아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쓰레기 국을 줬어요” 이 말을 하며 우린 또 웃었다.

시래기 특유의 냄새를 좋아하지 않아 시래기로 음식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엄마에게 들었다. 물론 지금은 시래기 철이 되면 일부러 시골에서 몇 박스를 주문해 쟁여놓을 정도로 시래기를 좋아한다. 엄마가 시래기 사놓았으니 가져가라 하신다. 하마터면 머리채를 잡을 뻔했던 그날의 전쟁을 막아준 시래기국. 오랜 만에 그 국을 끓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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