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천
> 사회 > 노동ㆍ환경ㆍ복지
상처소금꽃 (25)
시사인천  |  webmaster@isisa.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707호] 승인 2017.11.13  16:17:39
트위터 페이스북 google_plus

노동으로 흘린 땀이 마른 자국이 마치 꽃과 같아 소금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비)노동자들이 시민기자로 참여해 노동 현장이나 삶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10월이면 공원에 있는 참나무나 상수리나무 허리에 상처가 생긴다. 어른 머리만 하게 껍질이 벗겨져 있고 하얀 속살이 짓이겨져 있다. 같은 상처를 해마다 입었는지 허리 여기저기 커다랗게 얽은 모양도 눈에 띈다. 자연적으로 생긴 상처는 아니다. 바로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 때문이다.

참나무와 상수리나무 열매는 도토리다. 10월 무렵 무르익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도토리를 주우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무 주위를 기웃거린다. 법으로야 ‘가로수나 공원에 있는 나무 열매를 따는 것, 떨어진 열매를 주워가는 것은 절도죄’라고 돼있지만, 주워가는 것까지 못하게 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주워가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무를 흔들고, 발로 차고, 심지어 큼직한 돌로 나무 허리를 때려 도토리를 떨어뜨린다. 공원관리원들이 근무할 시간에는 못하게 막을 수 있지만, 퇴근한 뒤에는 말릴 사람이 없다. 출근해 살펴보면 돌에 얻어맞은 상처가 더 깊어져 있다.

참나무와 상수리나무만 그런 건 아니다. 봄이면 버찌를 따 먹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벚나무 가지가 여기저기 부러지기 일쑤고, 공원에 몇 그루 있는 앵두나무는, 설익은 열매를 죄다 따가는 바람에 빨갛게 익은 앵두가 달린 걸 보기 어렵다. 약효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뭔가 만들어 먹기 까다로워서인지, 그나마 돌배와 꽃사과는 무사히 남아 있다.

지난 9월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지나가며 내게 성을 냈다. 다 익지도 않은 모과를 다 따갔는데 못 따가게 안 하고 뭐 했냐는 것이다. 공원을 밤새 지킬 수 없지 않느냐고 했지만, 자신의 모과를 남에게 빼앗겼다는 식의 말에 쓴웃음이 나왔다.

십정녹지공원은 6차선 도로와 붙어있고 도로 너머엔 공장지대가 있다. 매연 등을 걸러주기 위해 녹지공원을 만들었을 것이다. 공원의 풀과 나무들은 날마다 매연을 뒤집어쓰며 오염된 공기를 걸러준다. 그런 나무의 열매를 왜 가지려고 난리인지 모르겠다. 지난해 가을 공원에서 청설모를 봤다.

상수리나무 주변을 기웃거리는 거로 봐서 먹이를 찾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보이기에 공원 어딘가에 둥지를 틀었나보다 했는데, 올해에는 전혀 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나무 꼭대기에 달린 도토리까지 싹 쓸어가 버리니,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건 아닐까.

감나무의 감을 따면서 몇 알 남겨 두는 풍습이 있다. 까치밥이라 부르는 이것은 날짐승을 위한 배려고 양보였다. 아무리 못 먹어도 그 정도 여유는 가지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 도시에서 그런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설익은 열매를 따가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 나무를 두들겨 패고 있으니, 배려와 양보하는 여유가 끼어들 틈이 없다. 물질적으로 궁핍했던 옛날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있지만, 더 잘 살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나무의 상처가 더 안쓰럽고 아프다.

/김진수 시민기자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시사인천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최근인기기사
1
주민이 마을교사 돼 방과후학교ㆍ자유학기 수업 참여
2
글로벌 항공사 대한항공, 지구촌 곳곳서 나눔 활동 펼쳐
3
정대유 전 차장, “징계위원회 열리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4
[세상읽기] 인천도호부 ‘청사’를 인천도호부 ‘관아’로
5
청라국제도서관, 녹색건축대전 ‘최우수상’
6
정리의 비법
7
어쩌란 말인가? 배달대행 청소년노동자의 산재사고
8
물류기능 넘어 동북아 산업 전진기지 꿈꾸는 부산·광양항
9
시민단체, OCI 지하폐석회 처리 ‘시민감시단 구성’ 촉구
10
심혜진의 사소한 과학이야기 151. 탄산음료(1) 콜라
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21513) 인천시 남동구 경인로 764(간석동) 이화빌딩 401호 | TEL 032-508-4346 | FAX 032-508-4347
상 호 : 시사인천 | 등록번호: 인천다01172 | 등록연월 : 2002.08.26. | 발행인·편집인 : 박길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희
Copyright © 2007 시사인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isis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