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 시민기자의 사소한 과학이야기 173.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심혜진 시민기자의 사소한 과학이야기 173.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 심혜진 시민기자
  • 승인 2018.10.0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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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d(씨앗), 구리, 100×100, 2018, 차경진. (사진 왼쪽)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사진 오른쪽)
Seed(씨앗), 구리, 100×100, 2018, 차경진. (사진 왼쪽)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사진 오른쪽)

얼떨결에 미술작품 전시를 봤다. 지인과 점심을 먹기로 한 음식점 지하에 아담한 전시공간이 있었다. 구리로 만든 작품 몇 점이 은은한 조명 아래 묵직한 아우라를 풍기며 맞이했다. 차갑고 딱딱한 금속을 용접해 사람 얼굴과 나뭇잎, 꽃 등 살아있는 생명을 표현한 것이 무척 매력적이었다.(사진)

짧은 선들을 이어 2차원 평면과 3차원 공간을 만들어낸 것을 보고 있노라니, 학창시절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했던 놀이가 생각났다. 연습장에 점을 잔뜩 찍어 놓은 다음 번갈아가며 점들을 이어 누가 더 삼각형을 많이 만드는지 겨루는 놀이였다. 옆에 있던 지인이 말했다. “맞아. 그 원리를 이용한 작품이야.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조각품을 만든 이는 지인의 남편이었다. 그 간단한 놀이에도 원리가 숨어있다니, 흥미로웠다.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했던 놀이가 곧바로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이 되는 건 아니었다. 평면 위에 점 여러 개를 찍고 가장 가까운 점끼리 이으면 평면은 삼각형들로 빈틈없이 채워진다. 놀이를 하며 그렸던 그 삼각형들이다. 이것을 델로네 삼각형이라 부른다. 이 삼각형의 각 변에 수직이등분선을 그리면 이것을 변으로 한 새로운 도형들이 생기는데 이것이 보로노이 다각형이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이라 한다.

보로노이 다각형은 특정 점을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점들의 집합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만일 어디선가 화재가 발생하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소방서에서 출동해야한다. ‘그림’의 빨간 점을 소방서라고 가정하면, 빨간 점 주위로 검은색 선으로 이뤄진 도형(보로노이 다각형)이 보인다. 그 도형들은 각 빨간 점(소방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역을 나타내며, 한 소방서가 관할해야할 지역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또, 경찰서나 보건소, 행정복지센터 등 공공기관을 누구나 접근하기 좋은 공간에 설립하는 데에도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원리가 응용된다.

물론 점과 점 사이에 높은 산이 놓여있다거나 편히 오갈 도로가 갖춰져 있지 않을 수 있다. 현실에선 지형과 도로 유무, 인구밀도, 교통인프라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한다. 또한, 주민 편의시설이 아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상점의 경우 최단 거리가 아닌 소비자가 많은 곳에 지어지기 때문에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원리를 적용하지 않는다.

이를 거꾸로, 내가 사는 곳의 지도를 인쇄해 관공서나 공공기관을 점으로 표시하고 보로노이 다각형을 그려 실제 관할구역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정말 효율적으로 나뉘어져 있는지, 아니면 행정 편의를 우선으로 했는지, 도서관이나 보건소 등 편의시설이 너무 멀리 있는 지역은 어디인지,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은 현미경으로 바라본 식물세포의 조밀한 구조나 기린의 얼룩무늬, 잠자리 날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자연 구조와 닮아 예술적 가치도 높다. 이 때문에 건축 구조물이나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이를 활용한다. 내가 그날 음식점에서 본 조각 작품처럼 말이다.

질서가 없는 듯 보이는 도형들이 점을 중심으로 완전한 균형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생각할 거리를 준다. 모양이 제각각이라 해도 중심점이 없는 도형은 없으며, 서로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경계를 지킴으로써 보는 이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한다는 점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