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책방 15. 동물과 교감, 어디까지 해봤니?
무지개책방 15. 동물과 교감, 어디까지 해봤니?
  • 심혜진 시민기자
  • 승인 2018.10.0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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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등

얼마 전 모임에서 누군가 말했다. “고양이와 교감이 되나요? 고양이 눈을 보면 사람을 믿는 것 같지 않아요. 기분 나쁘면 할퀴거나 물 것 같아 무서워요” 그는 치매를 앓고 있는 열여섯 살 개와 함께 살고 있다. “강아지는 다르죠. 뭘 좋아하는지 지금 기분이 어떤지 다 알 수 있거든요” 1년 전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15년을 함께 한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그 어떤 동물과도 함께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슬픔이 조금 단단해졌을 무렵, 유기견을 입양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별이 두려웠다. 그 즈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동네 어느 집에서 내다 버린 고양이에게 며칠 밥을 챙겨주다가 그만 ‘밥 정’이 들어 입양까지 하게 된 것이다.

고양이는 강아지와 정말 달랐다. 고양이는 조금이라도 귀찮거나 불편하게 하면 앞발을 휘둘러 ‘냥펀치’를 날렸다. 할퀴는 것도 예사였다.

책과 인터넷 동호회에서 고양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차츰 알아갔다. 고양이는 식성이 까다로워 강아지처럼 아무 사료, 아무 간식이나 먹지 않았다. 사냥 본능을 놀이로 해소해주지 않으면 지나가는 내 다리를 물거나 옷을 잡아당길 수 있음도 알았다. 철사 끝에 매달린 잠자리 장난감을 잡으려 공중제비를 돌며 실컷 놀고 난 후 푹신한 이불 위에서 코를 골며 잠을 잘 때, 이때가 발톱 깎기 가장 좋은 때였다.

냥펀치를 날리다가도 이내 졸린 듯 눈을 지그시 감고 편안함과 행복을 알리는 ‘눈 키스’를 주고받으며 고양이와 함께 사는 행복에 눈을 떴다. 강아지의 낙천적 성격과 주인을 향한 한결같은 믿음에 감동했고, 고양이를 통해 까칠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당당함을 배웠다. 동물과의 교감으로 내 삶에 값진 것이 늘어난 기분이 들었다.

내게 만일 또 다른 동물과 함께 살 기회가 생긴다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지 않을까. 분명 그렇겠지만 도시의 아파트에서 인간과 행복을 나누며 살 생명체는 그리 많지 않다. 대신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와 나누고 싶어 하는 이도 많다. 대학 기숙사에서 펭귄과 함께 살고, 수족관 문어와 교감하고, 사나운 참매를 길들인 이들 말이다. 펭귄, 문어, 참매와 함께 한 인간들의 놀라운 삶을 소개한다.

# 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톰 미첼 지음|박여진 번역|21세기북스 펴냄
 

기름 유출 사고로 펭귄들이 떼죽음을 당한 우루과이의 바닷가. 생지옥이 따로 없는 그곳에서 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펭귄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인다. 나는 여행 중이고 오늘은 마지막 날. 내일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야 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의 저자 톰 미첼은 그 펭귄에게 “희망의 씨앗”을 느낀다. “만약 몸을 깨끗하게 씻어준다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저 새에게 삶의 기회를 줘야하는 건 아닐까?”(19쪽) 그는 해변 쓰레기에서 찾아낸 그물과 막대기로 펭귄을 잡아 숙소로 사용하던 친구의 아파트로 무사히 데리고 오는 데 성공한다. 사납게 굴던 펭귄은 한 차례 저자의 손가락을 물어 피를 흘리게 하더니 씻기기 시작하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얌전해진다. “마치 내가 자신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기름을 없애주려는 것임을 문득 깨달은 것 같았다”(35쪽)

저자는 깨끗이 씻긴 펭귄을 다시 바다에 놓아주기로 하지만 펭귄은 저자의 곁으로 몇 번이나 다시 돌아온다. 사실 바다 조류의 털에는 방수막이 있어 찬 바다에서도 얼어 죽지 않지만 이를 세제로 씻길 경우 얼어 죽고 만다. 결국 펭귄은 다시 숙소로 돌아왔고, 저자는 이 마젤란펭귄에게 ‘후안 살바도르 핑귀노’란 이름을 지어준다.

이후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국경을 넘고 세관을 통과해 아르헨티나로 온다. 아르헨티나 기숙학교 교사였던 저자는 기숙사에서 펭귄과 동거를 시작한다. 테라스는 펭귄의 공간이 되었고, 학생들은 테라스에서 일광욕을 하는 펭귄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소문이 삽시간에 학교에 퍼지고 학생과 교사들은 펭귄을 보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날마다 생선을 사오고, 테라스를 청소하고, 먹이를 주는 자원봉사자까지 생긴다.

“후안은 충분히 배부르게 먹었다 싶으면 학생들 무리 가운데 서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학생들 얼굴을 빤히 바라보곤 했다. 그러고 나서는 조끼가 꽉 죌 정도로 부푼 배를 안고 따뜻한 오후의 햇살 아래서 꾸벅꾸벅 졸다가 학생들의 다리를 기둥 삼아 기대어 잠이 들곤 했다. 개중에 배려가 많은 아이들은 아기처럼 불룩해진 후안의 배가 위쪽으로 오게 해서 눕혀줬는데, 그러면 후안은 뒤척이지 않고 깊이 잠들곤 했다”(140쪽)

펭귄은 좋은 대화 상대이기도 했고, 심지어 펭귄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후안에게 푹 빠지는 이유는 후안이 고매한 성직자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아주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시시콜콜한 날씨 이야기부터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누군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후안은 골똘히 집중하며 귀를 기울였고 절대로 중간에 끼어들거나 하지 않았다”(158쪽)

어느새 학교의 마스코트가 된 펭귄, 하지만 어떤 만남이든 이별은 찾아오는 법이다. 저자는 펭귄과 함께 사는 동안 책임감을 배웠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젠가 인간이 동물의 행동에서 교훈을 얻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물도 인간과 소통할 수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게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러한 말이 허황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293쪽)

펭귄이 인간과 교감하며 가까워지는 과정이 흥미롭고, 환경오염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성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 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공경희 옮김|판미동 펴냄
 

저자 헬렌 맥도널드는 사진 저널리스트인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누비며 매잡이가 되려는 꿈을 키웠다. 어느 날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헬렌은 삶 전체가 흔들리는 충격을 받는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려서부터 기르고 싶었던 야생 참매를 길들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부둣가에서 참매 한 마리를 산다.

“이 새는 깍깍대는 게 아니라 비통한 소리를 질러댔다. 고통에 시달리는 것 같은 크고 무시무시한 소리를 토해냈고, 그 소리는 견디기 힘들었다. 속으로 ‘이게 내 매구나’라고 중얼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숨을 쉬는 것밖에 없었다”(95쪽)

매를 길들이기 위해선 장갑 낀 주먹 위에 매가 올라오게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길들이는 사람이 매에게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머리를 비우고 희망을 마음에 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아야’ 한다.

“오랜 세월 매를 길들이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 바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린 매가 내 왼손에 앉아 원색적이고 방어적인 공포 속에서 먹이를 발치에 두고 있을 때 내가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참매는 개나 말처럼 사교적 동물이 아니고, 강압이나 체벌을 이해 못 한다. 매를 길들일 유일한 방법은 먹이를 선물하는 긍정적 강화를 통하는 길뿐이다. 내가 준 먹이를 참매가 먹기를 기다린다. 이것이 매를 가르치는 첫걸음이고, 나는 결국 사냥 파트너가 될 것이다”(114쪽)

저자의 손에 든 고기를 먹을 정도로 매가 길들자, 저자는 ‘메이블’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사랑스럽거나 귀엽다는 뜻이다. 처음엔 발에 가죽 줄을 단 채 점점 멀리 날리다가 결국엔 줄 없이 자유롭게 날린다.

책은 저자가 꼭꼭 눌러 쓴 섬세한 감정을 따라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개가 낀 듯 몽롱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참매의 매섭고 빛나는 눈과 몽환적이고 섬세한 문체가 묘하게 어울려 짙은 잔상을 남긴다. 출판사의 소개 글처럼 “자연에 의탁하여 슬픔을 망각하고 고통에 무뎌지는 방식이 아닌, 상실과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돌파한 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긴 여정을 담은” 멋진 책이다.

# 문어의 영혼
사이 몽고메리 지음|최로미 옮김|글항아리 펴냄
 

영화에서 외계 생물체나 괴물을 문어와 비슷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머리에 다리가 달린 두족류인 데다 문어의 피가 파란색이라는 게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저자인 사이 몽고메리는 수족관을 찾아다니며 문어의 행동을 관찰하고 감정을 살피는 것을 넘어 피부로 교감했다. ‘문어의 영혼’은 그 기록을 담은 책이다.

문어를 비롯해 낙지나 오징어 등 두족류는 다리가 끊어져도 고통을 느끼지 않고 그저 본능적으로 움직일 뿐이라는 고약한 이야기가 사실처럼 떠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문어 역시 주위를 관찰하고 정보를 모으며 교감을 원하는 생명체임을 알게 된다. 다만 사람과 방식이 다를 뿐이다. 문어의 신경세포는 3억 개가량 있는데 대부분 팔에 집중돼있다. 눈은 색맹이지만, 주위 환경에 따라 피부색을 바꿀 줄 안다. 귀찮거나 위험한 상대를 만나면 물을 뿜어 쫓아버리는데, 때론 유희를 위해 물을 뿜는다. 지능이 있는 동물만이 놀 줄 안다.

“두족류는 우리와는 생판 다른 정신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문어에게서 확인하는 지능에는 하나로 집중된 자아가 없을 수도 있다. (중략) 그건 우리와 아주 다른 무언가를 상상해야 한다는 뜻이며 그 다른 무언가는 우리가 생각해볼 수조차 없는 무언가일 수도 있다”(227쪽)

문어에게 애틋하고도 달콤한 감정이 생기게 만드는 책이다.

[참고] ‘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의 인용문에 표기한 쪽 표시는 전자책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