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퀴어문화축제 “우리는 여기있다”
인천퀴어문화축제 “우리는 여기있다”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8.09.0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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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훼손 등 거센 반대에도 행진까지 마무리
참가자들 '존재 알린 것만으로도 성공' 자평
축제 참가자들이 반대단체에 둘러쌓여 고립돼 있다.
축제 참가자들이 반대단체에 둘러쌓여 고립돼 있다.

인천퀴어문화축제가 반대 단체들의 거센 방해 속에서 8일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진행됐다.

당초 퀴어축제 준비위원회는 오전 11시 부스행사를 시작으로 무대공연, 거리행진 등을 오후 6시 까지 마무리하기로 계획했으나, 반대 단체들의 거센 방해에 밤 9시가 넘어서야 행진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축제를 방해한 반대단체들은 전날 밤부터 동인천역 북광장에 미리 차량들을 주차를 해놓고, 철야농성을 하며 축제 준비를 막았다.

축제 당일에는 관광버스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동인천역 북광장을 점거 한 채 집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으로 축제 참가자는 300여명, 반대측은 1000여명이다.

축제 참가자들은 정당한 집회 신고를 마쳤음에도, 불법집회를 연 반대 단체들에 둘러쌓여 광장 한쪽으로 고립됐다.

오전 10시 무렵부터 고립된 축제 참가자들은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을 갈 수 조차 없었다. 반대측은 띠를 둘러 축제 참가자들이 안으로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했다.

축제 준비위가 행진과 물품을 옮기기 위해 준비한 트럭도 반대측에 막혀 행사장에 진입하지 못했다. 반대측은 물품을 실은 3대의 트럭 바퀴를 모두 펑크내고 사물놀이 공연 물품도 가져가기 까지 했다.

반대측은 축제 준비위가 행진 등을 위해 준비한 트럭의 타이어까지 펑크냈다.
반대측은 축제 준비위가 행진 등을 위해 준비한 트럭의 타이어까지 펑크냈다.

경찰은 인천·서울·경기 등에서 700여명이 모였지만 축제 참가자들과 반대측과의 마찰을 막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혐오는 누가 만드는가

반대측이 애초에 축제를 반대한다고 했던 이유는 성인물품 판매와 과도한 노출 등이었다.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축제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행사장 안에서 열린 부스에서는 성인용품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부스 진행자들은 직접 만든 깃발과 벳지, 스티커, 악세사리 등을 판매했을 뿐이었다. 집회를 반대할 만큼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사람도 역시 없었다.

축제에서 판매 된 물품들
축제에서 판매 된 물품들

반대측은 행진을 위해 축제 참가자들이 앞으로 나가려 하자, 길에서 팔짱을 끼고 드러누워 행진을 방해했다.

경찰은 ‘합법적인 집회를 막는 것은 집시법에 의거 처벌받을 수 있다. 해산해달라’고 수차례 방송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 반대측 집회 참가자는 “인천은 외국에서 여러 종교가 처음 들어온 깨끗한 곳이다. 이곳에서 이런 불법축제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대측은 축제 참가자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물을 뿌리는 등 폭력행위를 하며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구호를 연신 외쳤다. 일부는 극한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교회에서 나왔다는 50대 남성은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축제 참가자들의 해산을 요구했다.
한 교회에서 나왔다는 50대 남성은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축제 참가자들의 해산을 요구했다.

우리는 여기있다

반대측의 방해로 축제 준비위가 계획했던 대로 행사는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당초 40여개를 예상했던 부스도, 공연 등을 위해 세우려던 무대도 설치하지 못했다.

그러나 축제 참가자들은 고립 된 상황 속에서도 함께 둥글게 모여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등 축제를 즐겼다.

예정됐던 행진은 오후 4시 30분께부터 시작됐지만 당초 계획했던 코스가 아닌 동인천역 남광장까지 아주 짧은 거리를 행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기위해 거리로 나오자, 반대단체가 행진을 막고있다.
축제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기위해 거리로 나오자 반대단체가 행진을 막고있다.

이들은 ‘혐오를 반대한다’, ‘우리는 여기있다’등의 구호를 외치며 천천히 행진을 마무리했다.

한 참가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인천에 다신 오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어딘가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인천사람이다”라며, “혐오와 차별을 만들어 내는 게 누구인지, 이 상황을 보면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행사장 밖에서 만난 한 시민은 “동성애나 성소수자에 대해 지지하지 않을 순 있는데, 저렇게까지 폭력적으로 나오는 반대 단체들의 모습을 보니 인천시민인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처음으로 열린 퀴어축제는 계획했던 대로 원활하게 진행되진 못했지만, 그동안 사회적 억압과 차별, 혐오 속에 숨죽여있던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축제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행진을 마친 후 참가자들에게 “우리가 당초 준비한 축제는 실패했을 수 있지만, 여러분들은 실패하지 않았다"며 “여러분들과 함께 계속 나아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