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길병원 민주노조, 이미 준비돼있었다”
[인터뷰] “길병원 민주노조, 이미 준비돼있었다”
  • 김갑봉 기자
  • 승인 2018.08.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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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길병원지부장

지난달 20일 가천대길병원에 19년 만에 민주노조(=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길병원지부)가 설립됐다. 민주노조 설립으로 길병원 내 ‘갑질 경영’과 ‘노동 착취’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요 ‘갑질’행위와 부당노동행위는 임신순번제, 임산부 야간근무 동의서 징구, 임신 초기ㆍ말기 단축노동 무허가, 직원들에게 의료법인 길의료재단 이사장 생일 축하 동영상 촬영 강요, 이사장 사택 관리에 직원 동원, 노조 간부 퇴근길 미행과 업무시간 내 그림자 감시, 노조 가입 방해, 시간 외 근무수당 미지급, 미사용 연가 사용한 것으로 처리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밖에도 길병원은 보건복지부 공무원 뇌물 공여와 국회의원 불법정치자금 후원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갑질 경영과 노동 착취로 짜낸 병원 수익이 뇌물과 불법정치자금으로 쓰인 셈이라 직원들은 분노했다.

이는 민주노조 지지로 이어졌고, 민주노조는 길병원의 기존 기업별노조를 대체하고 제1노조 지위를 얻었다. 하지만 새 노조가 처한 상황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지난 9일 강수진 길병원지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편집자 주>


19년 전 민주노조 좌절 후 어떻게 다시 준비했나?
 

강수진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길병원지부장.
강수진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길병원지부장.

1999년에 민주노조를 설립했다가 좌절했다. 지금보다 더한 부당노동행위와 노조 활동 방해 공작에 시달렸다. 좌절하긴 했지만, 그때 민주노조를 준비했던 사람 5명이 병원에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떠났고, 민주노조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저를 비롯해 당시 민주노조를 준비했던 사람들의 가슴속엔 계속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 같다. 서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직원들을 대변하는 노조가 있었으면 하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일하면서 직원들과 얘기해보면 모두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새 노조는 제가 준비한 게 아니라, 이미 많은 직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부당노동행위가 병원에 만연했기에 다들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얘기하다 보니 서로 연결되고, 마음을 모아 새 노조를 만들었다.

사실 저를 비롯해 1999년 이후 남아있던 선배들은 후배들의 요청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민주노조를 다시 꺼냈다. 1999년을 겪었던 선배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했다. 이제 새 길을 열어가는 후배들을 지켜주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직원들의 폭발적인 새 노조 가입을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7월 20일 노조 설립 총회를 하고, 다음 날 새 노조 설립을 알리기 위해 병동과 부서를 순회했다. 가는 곳마다 직원들이 뜨겁게 환영해줬다. 준비해간 노조 가입원서가 모자랄 정도였다.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부당한 대우에 시달리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직원들은 이미 새 노조를 준비하고 있었고, 준비돼있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늦게 왔나 싶어 미안했다. 폭발적인 가입에 벅차고 고마웠다. 뜨거운 눈물이 마음과 몸을 감쌌다. 올해 여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새 노조에 폭발적인 가입은 병원 개혁을 바라는 직원들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언론에 보도된 ‘갑질’ 경영과 부당노동행위 외에도 여전히 부당하고 부조리한 행위들이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중환자실과 수술실 등 특수부서를 제외한 직원들은 가운을 자기가 알아서 세탁해야한다. 병원은 위생이 핵심인데 이를 개인한테 전가한 것은 문제다. 또, 신혼여행을 갔다 오거나 육아휴직 복귀 시 상급자에게 선물을 바쳐야하는데, 심지어 마음에 안 들면 바꿔줘야 한다. 아울러 상급자의 부서 이동이나 본인 승진 인사 때 5만~10만원을 걷어 선물을 챙겨야한다.

급여체계도 심각하다. 급여체계에서 기본급은 연차가 오래돼도 별로 차이가 없고, 특근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특근이 많은 신규 입사자가 20년차 직원보다 급여를 더 많이 받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직률이 높아, 병원은 늘 일손이 부족하다. 그래서 통상 출근시간보다 30분 일찍 출근하고 1시간 늦게 퇴근한다. 열악한 환경 개선을 바라며 기존 노조에 의지했는데, 실망이 커 새 노조 지지로 이어진 것 같다.

새 노조 설립 후 직원들에게 달라진 변화가 있나?

얼굴 표정과 말투가 밝아졌다. 병원 일이 고된 데다 부당한 대우까지 받고 있으니 자기 일이 아니면 피하려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곤 했는데, 이젠 직원끼리 서로 이해하고 인사하는 관계로 변했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올라오는 각 병동과 부서에서 발생한 일들을 공유하면서 ‘아, 저 병동에서 저런 일로 힘들었겠구나’ 하고 공감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조금씩 다른 부서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게 됐다. 이제는 서로 밝게 인사한다. 새 노조 설립만으로 직원끼리 경직됐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새 노조 방해 행위는 여전한가, 아니면 달라졌는가?

처음 설립 후 일주일간은 19년 전과 별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길병원의 비상식적 갑질 경영과 부당노동행위 실태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에는 대놓고 하는 부당노당행위는 줄었다.

직원들의 용기도 부당노동행위를 줄였다. 기존 노조 가입을 종용하는 상급자에게 ‘노조가입을 강요하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강하게 얘기하니, 강요행위가 줄었다. 부서장과 수간호사가 자발적으로 기존 노조 가입을 권유했다고 보기 어렵다. 자신들의 행위가 옳지 않은 데다 부당노동행위로 신고 된다고 하니, 그런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방해는 여전하다. 부서장이 기존 노조에 가입하라고 부하직원들을 붙잡고 울면서 ‘네가 가입 안 하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종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존 노조에 가입하는 직원도 있다.

또 어떤 직원들은 기존 노조에 탈퇴원서를 제출했는데, 1시간이 채 안 돼 부서장과 면담을 해야 했다. 19년 전보다 부당노동행위 강도는 덜 하지만, 감시ㆍ미행ㆍ협박 등을 그대로 하고 있다.

19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촛불혁명이다. 아마도 촛불혁명이 없었다면 부당노동행위는 심각했을 것이다.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한림대의료원ㆍ동국대병원ㆍ건양대병원ㆍ국립암센터 등 26개 사업장에 노조가 설립됐다. 우리도 이 영향을 받았다.

19년 전 민주노조를 설립했다가 좌절했던 아픈 경험을 안고 있기에, 이번에 보여준 동료들의 뜨거운 반응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새 노조도 설립 목적과 다르게 흔들릴 수 있다. 와해되지 않게 수평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토론문화를 확산하고, 서로 살피고 배려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사측은 새 노조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
 

강수진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길병원지부장.
강수진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길병원지부장.

보건복지부 공무원 뇌물 공여와 정치인 불법정치자금 후원 혐의로 병원장이 입건돼 수사를 받자, 새 병원장을 임명했다. 새 노조 설립 후 일주일 뒤에 새 병원장이 왔는데, 공식적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새 병원장에게 대화하자는 취지로 공문을 보냈는데, 복수노조가 있는 상황이라 중립적 입장을 취하겠다고만 했다. 그런 뒤 개별 교섭을 통보했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복수노조가 있으면, 사측은 우선 교섭창구를 단일화하기 위해 복수노조에 자율교섭기간을 준다. 노조가 복수이면 임금ㆍ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게 복잡하니, 노조끼리 협의해 교섭 요구안을 만들어 교섭창구를 단일화해 달라는 주문이다. 노조끼리 협의가 안 되면 조합원 총수의 과반을 차지한 제1노조가 교섭권을 쥔다. 드물게 사측이 각 노조와 개별 교섭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길병원이 그렇게 됐다.

사측은 전체 조합원의 과반을 차지한 우리 새 노조한테 제1노조 교섭권을 주지 않고, 두 노조와 각각 교섭하기로 했다. 사측이 기존 노조를 더 많이 배려하는 방식으로 새 노조를 차별할 수 있지만, 우리 조합원들을 믿고 우리의 길을 걸으며 원칙대로,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계획이다.

민주노조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길병원 직원 단체 대화방에 병원의 실태를 아프게 꼬집는 글이 올라왔다. ‘비영리단체가 어느 곳보다 영리를 더 추구한다, 병원에서 정작 직원들은 고통 속에 속은 곪고 뼈는 삭고 있다. 산부인과부터 시작한 길병원이 정작 새 생명의 탄생과 모자 보호를 모른다, 건물과 수익은 점점 늘어나는데 직원들의 형편은 점점 줄어든다, 외부에 뿌릴 돈은 있어도 직원들에게 줄 돈은 없다’고 했다.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바꾸는 노조가 되겠다.

지금은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시급하다. 특별근로감독으로 병원 안에 만연한 갑질 행위와 부당노동행위를 규명하고, 근절 대책을 마련하게 하겠다. 그리고 이른바 ‘공짜 노동’이 사라지게 하겠다.

병원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직원들이 환자나 보호자를 잘 대할 수 없다.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병원, 직원들을 웃음 짓게 만드는 병원이 좋은 병원이다. 길병원이 일하기 좋은 병원, 이를 통해 환자들도 잘 대우받는 병원이 되게 하겠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는 ‘돈보다 생명’을 강조한다. 길병원이 인권존중, 환자중심, 안전중심의 가치를 지키는 병원이 될 수 있게 동반자가 되겠다. 병원의 혁신을 위해 열린 토론문화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조직문화부터 바꿔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