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시론]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 시사인천
  • 승인 2018.05.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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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래 국제관계학 박사
김국래 국제관계학 박사
김국래 국제관계학 박사

2018 남북정상회담을 분수령으로 ‘동북아시아의 화약고’ 한반도는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한반도는 언제, 어떻게 무력충돌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경제 제재 강화냐 무력 동원이냐 하는 두 갈래의 길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는 듯 보였다. 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대화 국면으로 전환된 것은 당연히 한국정부를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의 노력에 의한 결과다.

한국전쟁의 교전 쌍방은 3년 1개월간의 전면전, 2년 1개월 동안의 정전협정 협상을 거쳐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에 합의했다. 이 정전협정의 가장 큰 의의는 교전 쌍방의 전투행위를 멈추게 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53년 7월 27일 밤 10시를 기해 한반도 내 모든 전투행위는 중지됐다.

정전협정에선 군사정전위원회를 설치해 교전 쌍방(연합군 대 북한ㆍ중국군) 간 정치적 소통 통로를 마련했다. 이밖에도 제3국 감시기구인 중립국 감독위원회와 물리적 완충지대인 비무장지대 등, 정전의 이행과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또, 정전 후 3개월 안에 고위급 정치회의를 열어 영구적 평화체제로 전환과 외국 군대 철수 문제를 협의할 것 등도 이 정전협정에 명시했다. 평화협정의 성격도 일부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정전협정 이행의지 유무였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정전협정 협상에 극렬하게 반대했고, 협상을 방해하기 위해 민관을 동원한 정전협정 반대 관제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무력을 동원한 북진’ 계획을 추진했는데 미군의 제지로 무산되기도 했다. 이행의지가 없었던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정전협정 발효 3개월 안에 열기로 했던 정치회의에 응하지 않다가 이듬해 봄에 열린 회의를 파탄내고 말았다. 그 후에도 중요한 정전협정 위반사항 대부분은 한국군을 포함한 연합군 쪽에서 비롯했다.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하거나 미군 전략무기들이 전개되는 것, 최근의 ‘사드’ 배치, 심지어는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 살포 등도 모두 정전협정 위반행위다.

앞서 말한 정치회의가 파탄 났으니 외국군 철수 문제와 항구적 평화체제 문제도 논의될 마당이 없어졌고, 중립국 감독위원회도 1956년부터 공전하기 시작했다. 유일한 정치적 소통기구인 군사정전위원회도 1991년부터 개최되지 않았다. 이처럼 정전협정은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했다.

다음달 12일에 열릴 북미정상회담을 거치고 나면 살얼음판 같던 한반도의 정전협정체제도 막을 내리게 된다. 남북 간뿐만 아니라 북미 간에도 이미 큰 틀에서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보여, 동북아 정세는 빠르게 안정권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이를 확인하듯 한반도 비핵화, 한국전쟁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 등의 ‘평화로운’ 단어들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여전히 북미정상회담에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냉전적 사고를 가진 세력들의 방해도 따르게 마련이지만 이 세력들이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 언론이 전하는 불안정성과 불확실성마저도 사실은 정상적 범위 안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떤 협상이든 협상과정에서 양쪽의 입장 차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쟁 위기에 있던 한반도가 대화와 협상의 분위기로 반전된 현 상황은 누가 뭐라 해도 큰 진전인 것만은 분명하다. 북미회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무력충돌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나게 한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