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불모지’ 인천에도 ‘무지개 깃발’ 펼친다
‘인권 불모지’ 인천에도 ‘무지개 깃발’ 펼친다
  • 김시운 인턴기자
  • 승인 2018.05.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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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우리·이혜연 인천퀴어문화축제준비위 공동대표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 데이, IDAHO =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 Transphobia)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1990년 5월 17일을 기념해 지정했다. 그 후 28년,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인권은 얼마나 진일보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25일, <JTBC> 대선후보 토론에서 “동성애 차별은 반대하지만, (개인적으로) 동성애 자체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정치인이 특정 정체성 집단에 대한 혐오를 ‘개인적으로 좋아함과 싫어함’으로 방송에서 표현하는 것이 여전히 용인되는 한국 사회다.

인천의 상황은 더 험난하다. 충남이 5월 10일 인권조례를 폐지하기 전까지, 인천은 전국 17개 광역시ㆍ도 중 유일하게 인권조례가 없는 ‘인권 불모지’로 통했다. 2016년에 조례 제정을 시도했으나 ‘동성애 차별금지’가 조례 내용에 포함됐다는 이유 만으로 보수 개신교 단체들이 반발해, 시의회 본회의에서 무산됐다.

보수 개신교를 위시한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민낯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공간은 바로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는 퀴어(queer, 성소수자를 포괄해 지칭하는 단어)문화축제 현장이다. 그들은 퀴어 축제가 열릴 때마다 축제장 근처에서 확성기ㆍ북ㆍ꽹과리 등을 이용한 반대집회를 연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가 스스로 자긍심을 높이고, 권리를 인정받고자 벌이는 행사다. 크게 퍼레이드ㆍ부스행사ㆍ영화제 등으로 구성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퍼레이드인데, 축제 참여자들이 도심을 당당하게 행진하는 것이다. 성소수자 가시화 차원에서 이만한 방법이 없다고 평가한다. 퍼레이드엔 성소수자는 물론 비당사자도 참여할 수 있다. 서울에선 2000년부터 퀴어문화축제가 열려 올해 19회를 맞았다. 이어서 대구와 부산, 제주, 전주 등 여러 곳에서 앞 다퉈 열리고 있다.

인천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지난 1월 행사 준비를 위해 ‘인천퀴어문화축제 준비위원회’가 출범했다. <시사인천>은 지난 9일, 인천에서 무지개 깃발을 당당하게 펼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신우리ㆍ이혜연 인천퀴어문화축제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를 만났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혜연(왼쪽)ㆍ신우리 인천퀴어문화축제 준비위원회 공동대표.
이혜연(왼쪽)ㆍ신우리 인천퀴어문화축제 준비위원회 공동대표.

축제 준비 상황은 어떤가?

이혜연(이하 이) : 행사시기를 9~10월께로 예정하고 있다. 지금은 구체적 시기나 행사 장소를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장소는 인천종합예술회관 광장이나 부평문화의거리 등 여러 선택지를 놓고 논의 중이다. 곧 섭외할 예정이다. 노동ㆍ여성ㆍ장애인ㆍ동물ㆍ의료ㆍ정당 등 인천에서 활동하는 여러 단체들에 공문을 보내 연대를 요청했다. 행사에 함께할 단체들이 구성되면 5월 말이나 6월 초 쯤 조직위원회를 출범할 것이다.

신우리(이하 신) : 연대단체를 꾸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야 사회가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단체 활동이나 인권운동을 할 때, 본인이 속한 분야 의제에만 매몰될 경우 사회 변화를 일으키기에 역부족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여러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해 한정된 인적 자원의 한계를 극복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만의 축제보다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다.

이 : 준비위 역시 구성원이 다채롭다. 성소수자 당사자뿐 아니라, 연대하고 싶어 하는 비당사자도 포함돼있다. 성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부터 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회장, 정당 당원들까지, 소속 단체와 나이, 성적 지향, 성적 정체성 등을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있다. 사회엔 다양한 이들이 공존한다. 우리도 성소수자이기 전에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므로, 우리 조직 역시 다양한 얼굴과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천서 비교적 가까운 서울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데, 인천서 열려는 이유는?

신 : 연수구 옥련동에서만 35년을 살았다. 그만큼 인천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신한다. 인천이 서울의 위성도시쯤으로 취급되지 않고 당당히 주체성을 확보했으면 좋겠다. 사회ㆍ문화ㆍ인적 인프라 등 모든 것들이 서울에 집중돼있지 않나.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작년까지 ‘한국퀴어문화축제’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서울=한국’이라는 등식이 성립해 모든 것이 서울로 흡수되는 분위기를 깨고 싶다. 그래서 서울이 아닌, 인천에서 주체적으로 행사를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 또, 역사적으로 인천은 새 문물이 드나드는 개방과 포용의 도시였다. 인천의 제물포항은 항상 ‘괴상한 것들’(=새 문물)이 처음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처음엔 괴상한 것으로 여겼을지라도, 현재 우리 사회는 그것들을 포용하고 조화시켜 살아가고 있다.

신 : 그러나 성소수자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생소하고 괴상한 것으로 남아있다. 근대적인 인권 개념은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투쟁해 얻은 결과물이기보다 서구의 개념이나 학문이 수입된 경향이 강하다. 물론 성소수자의 존재는 인권 개념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한국 사회에 존재했겠지만, 소수자 인권 보장의 당위성이 수입됐다는 것이다. 새 문물을 항상 먼저 포용했던 인천이 왜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인권에 대해선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이 : 인천시민이 300만명이다. 그중 퀴어 인구가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퀴어문화의 중심지로 서울 이태원이나 종로만을 떠올린다.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 성소수자는 늘 곁에 있다. 시민들에게 성소수자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별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동네, 골목골목에 있는 이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이런 모든 고민과 성찰들이 담겨 인천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여는 것이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신 : 슬로건도 인천만의 특색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인천을 떠올렸을 때, 가장 보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인천국제공항이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가장 처음으로 지나치는 곳이 공항이지 않나. 그래서 ‘하늘’은 앞서 말했던 인천의 개방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다. 또 다른 의미도 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 혐오가 가장 만연한 집단이 종교, 특히 보수 개신교 집단이다. 그들이 숭배하는 ‘하늘’은 성소수자가 살아가는 땅 위의 하늘과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하늘도 우리 편’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한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이 : 인천에서 퀴어축제를 연다고 했을 때, 다른 지역 사람들이 가장 자주 보이는 반응은 ‘서울에서 하면 됐지, 왜 수도권에서 굳이 두 번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사실 퀴어축제가 열렸던 부산ㆍ제주ㆍ대구 모두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인천은 여행 오는 타지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식이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천도 한 번 와보면 큰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도시다. 단순히 ‘서울 옆에 붙어있는 도시’ 정도로 폄하될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퀴어축제를 계기로 인천의 매력적인 모습을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퀴어축제 개최로 얻고 싶은 성과는?

이 : 인천에는 인권조례가 없다. ‘인권 불모지’라는 오명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성소수자의 존재가 가시화되지 않았기에 생긴 일이다. 인천시민들에게 성소수자가 인천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 조례 제정의 정당성을 증명하고 싶다.

신 : 지난 1일, 예술회관 앞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에 ‘무지개 깃발(=성소수자와 다양성 상징)’을 들고 참여했다. 우리를 보고 행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놀라워하며 호기심 섞인 의아함을 보였다. 우리를 일상 속에서 봤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해 잘 모른다. 더더욱 가시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 이번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연 1회 정례화하고 싶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이날만큼은 맘껏 해방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집과 학교, 직장, 친구관계 등 본인이 속한 조직들에서 성적 지향과 성적 정체성 등으로 고통 받는 소수자들이 많다. 그들이 축제를 기다리며 1년을 버틸 수 있게 즐거운 추억을 선사하고 싶다.

‘아이다호 데이’를 맞아 혐오세력에 하고 싶은 말은?

신 : 당신들(성소수자 혐오세력)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득권층은 종교나 정치사상을 이용해 약자와 소수자를 핍박해왔다. 200년 전 미국에서 백인은 흑인을 비인간으로 취급했고, 100년 전 남성은 여성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가. 한국 사회 내 혐오집단들도 후대에 부끄럽게 여겨지는 시점이 올 것이다.

이 : 남을 구박하고 탄압하면서 기도할 시간에 당신 가족의 행복을 비는 기도를 하라. 남을 미워할 시간에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라.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 중엔 성소수자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