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연
어떤 인연
  • 심현석 시민기자
  • 승인 2018.04.1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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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 (27)

노동으로 흘린 땀이 마른 자국이 마치 꽃과 같아 소금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비)노동자들이 시민기자로 참여해 노동 현장이나 삶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혹시, 음… ○○○씨 아세요?” “아, 네…. 그럼 형수님?” 한 달여 전에 관내 화재 피해가구 복구현장에서 난 20년 정도 흘러간 세월을 더듬었다. 이십 대 후반, 나는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택시기사들은 험한 세상의 막장일을 하면서 일과 후에는 술로 시름을 달래기도 한다. 술기운에 가끔 동료들을 집에 불러 친목을 쌓는데, 그때 젊고 고우신 형수님을 처음 뵀다. 직업 특성상 주야 맞교대로 택시운전을 장시간 하다 보면 하체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동료들과 등산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 동아리에서 형님을 만났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산행은 신체도 단련시켜 주지만 회원들 간 친목도 돈독해진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셈이다.

당시 인천에는 택시회사가 40여개 있었다. 그중 34개에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있었는데, 2002년 여름엔 ‘완전 월급제 쟁취’를 외치며 파업을 67일간 벌이기도 했다. 내가 근무했던 SS운수노조도 민주노총 소속으로 당연히 파업에 참여해야 했다. 하지만 회사 측의 사주를 받은 위원장은 총회 결의 사항들을 뒤엎고 파업 불참을 선언했다. 나는 부위원장으로서 조합원들을 이끌고 파업대오에 간간이 합류해가며 위원장 불신임 분위기를 모아냈다. 불신임은 조합원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하다. SS운수는 택시업계에선 대기업으로 차고지 세 개를 따로 두고 있었다. 조합원을 하나로 묶는 일은 특수부대가 전술을 펼치듯 신속하고 정확해야 했다.

20명 정도로 민주노조 추진위원회를 꾸려 매일 전술을 짰고, 밤낮으로 조합원을 만났다. 그 결과 회사 측과 어용 집행부의 방해를 뚫고 두 달 만에 위원장 불신임을 성공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해고됐지만. 부위원장은 노조 반 전임자여서 한 달에 13일 일하게 돼있는데,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파업하는 동료들을 생각하니 내 욕심만 부릴 수 없어 13일을 다 채우지 않은 게 이유였다. 그로부터 20년 정도 지나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운전직공무원으로 그 형님 가족을 마주한 것이다.

도로환경미화원, 재활용 수거 직원, 공무원 두 명 포함해 일곱 명이 1톤 화물차 두 대를 몰고 화재 현장으로 갔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 3층으로 올라가 불에 탄 가구와 가전제품을 싣기 시작했다. 주민센터에선 대형 가전제품과 가구들만 치워주기로 피해주민과 약속한 상태였다. 살림살이가 모두 불에 타 건질 게 하나도 없었다. 피해를 복구하다 보니 당초 약속대로 큰 짐만 치워주기가 곤란해 모든 살림살이를 치울 수밖에 없었다.

“큰딸이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만…. 흐윽” 복구현장에 형님은 보이지 않았다. 형님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금쪽같은 세아이를 키우기에 형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성이 착하고 인간미 넘치는 그 형님은 늘 과묵했다. 난 그런 형님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민주노조 추진위원에 형님을 추천하기도 했다. 엊저녁 핸드폰을 붙들고 이 참사를 친구한테 말했다. “우리 조만간 형님하고 만나서 소주 한잔 하자” “응. 그래야지” 형님에게 세월이 약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