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이 아니라, 잠시 돌봐준 대가로 용돈을 준 거라고요?
고용이 아니라, 잠시 돌봐준 대가로 용돈을 준 거라고요?
  • 이로사 시민기자
  • 승인 2018.04.1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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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사 시민기자의 청소년 노동인권이야기 (12)
이로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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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청소년 노동 상담을 자신의 중심 활동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후배가 생겼다. 그 진로를 고민한 지는 오래됐지만 여러 사정으로 시작하지 못하다가 이제 발을 떼기로 했단다. 그 후배와 앞으로 활동 계획을 상의하는데 핸드폰으로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저 거기 아르바이트 상담하는 곳 맞지요?” “네, 맞습니다. 말씀하세요” “제가 당구장에서 일을 좀 했는데요. 이런 경우에도 상담할 수 있나요?”

그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에 앞서 자신이 상담할 대상자가 되는지부터 조심스레 물었다. 청소년들은 거의 대부분 이렇게 상담을 시작한다. 교사나 어른을 만날 때 ‘내가 말해도 되는 사람인가?’를 탐색하는 것이 알게 모르게 교육돼 습관이 돼버렸으리라.

그의 당구장 노동조건은 좀 특이했다. 밤 10시에 출근해 자정에 일을 끝내곤 했는데, 사장은 가끔 ‘종일 노동’을 시켰다. 겨우 하루 2시간 일을 시키려고 아르바이트를 고용한다? 그 사장은 왜 그랬을까. 나는 오전 10시부터 일한 게 아니었냐고 다시 물었다.

이런 경우 주 6일을 일한다 해도 주당 15시간을 채우지 못해 주휴수당을 받기 어렵고, 당구장의 경우 카운터에서 계산업무를 맡을 아르바이트 1명만 고용하는 게 일반적이라 야간수당을 줘야하는 5인 이상 사업장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사장 입장에선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을 수 있다 해도, 상식적으로 노동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런데 그의 시급은 5000원으로 최저임금 위반이었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노동청에 진정서를 넣을 수 있었다. 흔치않은 사례지만 상담활동을 막 시작한 후배가 다루기에 어렵지 않은 과제라 생각하고 당구장에서 근무한 기록을 준비해 같이 만나기로 했다.

사장의 항변은 이러했다. “내가 널 고용한 게 아니라 당구장을 잠시 돌봐주는 조건으로 용돈을 준건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지”

조금 특이하다고 여긴 사례였는데 사장의 이 한마디로 애매한 사건이 돼버렸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고용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니 피고용 상태였음을 증명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10년 넘게 청소년 노동 상담을 해왔지만 고용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례는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사업주가 근로계약서 작성을 꺼려해도 고용 사실은 명백했기에 근무기록을 입증하는 게 늘 관건이었는데, 고용한 게 아니라니.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봤다. 가족이나 친지도 아닌 남남 관계에서 일을 시키고 용돈을 준다? 말이 안 됐다. 그 청소년은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충분했다. 일하는 동안 손님이 없어 대기상태로 있어도 하루 2시간 근무를 약속했고, 그걸 지켰다. 노동청에 진정해 최저임금이라도 받아낼 사건이지, 사장이 고용 사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청소년 노동시장에 비일비재하다. 노동의 대가가 헐값으로 메겨지기 일쑤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쉬지 못하는 쉬는 시간’을 늘리는 노동조건에 놓인 아파트 경비원들도 다를 바 없다. 집에 일이 생겨 휴가를 내려면 다른 사람의 일당까지 책임져야하는 아파트 청소원도 마찬가지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최저 조건보다 한참을 밑돌아도 참아내는 장애인 노동자들도 다를 바 없다.

주변부 노동이라 여기고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상황이 청소년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개별의 일이 아니다. 약하고 부서지고 결국 터져버리는 상황들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서로 연결된 듯 비슷하다.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